책장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소설은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심호흡 2020. 5. 13. 19:58

* 스포 주의 : 영화 내용을 소개하지만 반전보다는 내면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어서 글을 읽고 영화나 책을 봐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영화 포스터(왼쪽) / 책 표지(오른쪽)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전 세게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찬을 받으며 2013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영화를 소설로도 썼는데요. 오늘은 2018년 출판사 블루엘리펀트에서 번역 출간한 그의 소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영화와 비교하며 소개드리려 합니다.

 

* 줄거리

일류 대학을 나오고 대형 건축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료타는 자신과는 달리 승부욕 없이 착한 아들 케이타가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 어느 날 6년 동안 키웠던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고민에 빠진 료타는 자신의 친자를 키운 가족과 만나며 아이들을 ‘교환’ 하기 위한 적응 기간을 갖기로 하는데

 

첫 장면, 어떻게 독자를 사로잡는가

강렬한 인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설정을 보여줘야 하는 첫 장면! 영화와 책은 시작부터 다릅니다. 영화는 료타와 아내 미도리, 아들 게이타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게이타의 사립학교 입학 면접 장면으로 시작하는 반면, 소설에서는 그 이전 게이타가 초등학교 입학시험 준비학원에서 행동 관찰 테스트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p.5

장난감 인형은 세 개뿐이었다. 아이들은 넷이나 있는데.

노노미야 미도리는 처음 방문한 그곳에서 긴장감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료타가 아닌 아내 노노미야 미도리입니다. 입시학원에서 경쟁과 리더십에 관한 테스트를 받는 중 우는 친구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는 게이타, 그런 게이타를 애틋하게 쳐다보는 미도리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착하고 유한 미도리, 게이타와 경쟁이 치열한 엘리트 사립학교는 왠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왜 이들은 이 학교에 가려고 할까? 궁금해질 무렵 첫 장면의 끝에서 아빠 료타를 등장시킵니다. 그녀는 머릿속에 단정하게 생긴 남편의 옆얼굴이 떠올랐다.’(첫 장면 마지막 문장) 독자는 왠지 어긋난 듯한 미도리와 게이타의 행보에 갸우뚱하고 료타라는 인물에 궁금증을 가지며 2(면접 장면)을 펼칩니다. 영화에서는 면접 장면으로 시작해서 바로 다음 아이가 바뀐 사실을 공개하는데요. 전반적인 분위기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방식을 택한 소설과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사건의 발단을 빠르게 공개한 영화는 시작부터 차이를 보입니다.

 

못다한 료타의 이야기, 성장하는 인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크게 료타의 3가지 스토리로 진행됩니다. 1. 료타의 직장 생활 2. 료타의 아들이 바뀐 문제 3. 료타와 아버지와의 오랜 갈등입니다. 영화는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2 료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반면 소설에서는 1,2,3이 적절히 번갈아 등장합니다. 덕분에 이야기의 진행은 조금 느려지지만 료타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더 잘 느껴집니다.

 

1. 영화에서 직장 생활은 가족과 시간을 못 보내는 료타를 보여주는 정도로 사용되는데 소설에서는 더 다양한 기능을 합니다. 료타는 큰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아이 문제를 처리하며 점점 일을 못하게 됩니다. 대신 능력 있는 후배이자 료타의 전 여자 친구인 하루나가 그 일을 맡아 하며 승승장구하죠. 료타와 게이타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불쑥불쑥 등장하는 회사 장면은 료타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며 긴장감을 높입니다.

 

3 소설에서는 료타의 과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료타가 초등학생 때 매일 싸우던 부모는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엄마 노부코가 같이 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는 기울고 료타는 다니던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학을 갑니다. 새엄마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 료타는 아버지에게 맞기 일수고, 그럴수록 독하게 공부한 료타는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죠. 영화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능력을 중시하는 료타의 엄격한 육아방식은 그의 과거에서 비롯됐습니다.

 

소설의 결말에서 료타의 1,2,3 스토리 모두 어느 정도 매듭지어집니다.직장에선 좌천당하며 성공가도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케이타와는 극적으로 화해합니다.아버지와는 화해를 하지 못하지만 새엄마 노부코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화로 전하죠. 소설에서 전화 장면은 클라이맥스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상처로 똘똘 뭉쳐 모든 등장인물에게 상처를 주던 고슴도치 같던 료타가 처음으로 변화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상처를 제일 큰 것으로 여겨 다른 이들의 상처를 보지 못하던 료타가 처음으로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이야기는 깨져서 다시는 이어지기 힘들 것 같던 관계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참신하고 사소한 계기를 통해서 말이죠.

 

작은 배역은 없다 / 미도리, 게이타, 유카리, 유다이, 류세이의 내면

소설에서는 료타의 아내 미도리와 바뀐 아이를 키운 상대 가족(유카리_아내/ 유다이_남편)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룹니다. 바뀐 아이를 알아채지 못했던 두 엄마의 죄책감, 아이를 바꾸며 키우던 아이에게 갖는 부모들의 죄책감, 아이 교환의 날이 다가올수록 양쪽 가정이 느끼는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p. 142

정신이 반쯤 나간 멍한 상태로 세 아이를 씻기고 목욕탕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유다이는 동작을 멈췄다.

평소 류세이는 엄마가 머리 말려주는 게 싫어서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유카리가 류세이를 가까스로 붙잡아서 머리 위에 수건을 덮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카리가 갑자기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러더니 류세이를 꽉 끌어안았다.

울어버리면 어쩌나 긴장하며 바라보는데, 유카리는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수건으로 류세이의 머리를 탈탈 털어주었다.

류세이가 또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반면 소설에서는 상처 받는 아이들의 내면을 묘사합니다. 류세이가 료타의 집에서 탈출해 유다이의 집(원래 살던 집)으로 가고 료타는 그런 류세이를 데리러 오는 장면에서 영화는 벽장에 숨는 게이타의 모습만 보여주지만 소설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p.280

그러나 게이타는 이해했다.미션이 끝난 거라고. 류세이는 돌아왔고, 아빠가 곧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요즘에는 밤에 울지도 않았고, 야마토랑 미유랑 싸워도 거의 지지 않았다. 여름방학 학습지도 유다이가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로 매일같이 열심히 해서 40일 분의 국어와 산수 학습지를 일주일 만에 끝내버렸다.

이젠 강해졌고, 우수해지기도 했다.

그러니 미션은 끝이다. 그래서 아빠가 데리러 온 것이다. 아마 엄마는 차에서 기다리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소설로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에 등장인물들과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관객으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이 영화 배우들로 상상되지만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읽으며 다양한 인물에 감정 이입할 수 있습니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면 책에서 묘사한 디테일한 감정들을 연기로 표현하는 배우와 연출에 감탄하며 영화를 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떠났을 때,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다시 보고 싶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였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책 리뷰를 연재하려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책 내용 리뷰 :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기까지> https://brunch.co.kr/@kimsou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