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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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써야 할까 <소설가의 귓속말>책장 2020. 5. 26. 20:49
무엇을 써야 할까. 글을 쓰기 전이면 늘 했던 질문이지만 요즘 내겐 뜻이 달라졌다. 무엇이 내 마음에 닿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써야 먹힐까, 사람들이 많이 클릭할까 궁리한다. 쉽고 짧게 많이 올릴 수 있는 글을 써볼까.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소개해볼까. 고민 끝에, 나는 잘 모르지만 유명한 가수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검색을 하고, 노래를 들어본다. 끄적여 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딴짓을 한다. “블로그 글쓰기 팁! 상위노출 되는 법!” 같은 유튜브를 클릭한다. ‘그래 이런걸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끄덕인다. 다시 글을 쓰려다 읽던 책을 집어 든다. 존경하는 소설가의 책을 읽다가 문장을 만난다. 한참을 멈춘다. 중요한가를 묻지 말고 절실한가를 물어야 한다. 나를 빼고 나 아닌 것에 대해서 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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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소설은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책장 2020. 5. 13. 19:58
* 스포 주의 : 영화 내용을 소개하지만 반전보다는 내면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어서 글을 읽고 영화나 책을 봐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전 세게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찬을 받으며 2013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영화를 소설로도 썼는데요. 오늘은 2018년 출판사 블루엘리펀트에서 번역 출간한 그의 소설 를 영화와 비교하며 소개드리려 합니다. * 줄거리 일류 대학을 나오고 대형 건축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료타는 자신과는 달리 승부욕 없이 착한 아들 케이타가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 어느 날 6년 동안 키웠던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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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기까지 _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책장 2020. 5. 1. 18:37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대체 나다운 게 뭔데! 세상도 사람도 마음에 안 들어 종종 가시 많은 고슴도치가 되는 학생이라면 이런 대화를 나눠봤을 것이다. 어린이 다울 것, 학생 다울 것을 넘어 어른 다울 것, 부모 다울 것, 심지어 “노인이면 좀..”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다움’ 속에 산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역시 난 OO가 될 자격이 없다’며 좌절하며 말이다. 이는 어쩌면 어떤 역할을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기 전에, 덥썩 맡아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 다움을 생각해보기 전에 입학을 하고, 부모다움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전에 부모가 되어버린다. 무엇 다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순간은 한 발짝 늦게 찾아온다. 때로는 힘든 선택의 순간과 함께. 동명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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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씨앗을 기르는 시간 _ <말의 선물>책장 2020. 4. 21. 16:58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사게 되었다’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책 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남과 겹칠 수도 있고 언젠가 낡기 마련인 선물을 사기보다는 ‘말의 선물’을 보낼 것을 작가는 제안한다. 말은 대상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심지어 세상을 떠났다 해도 보낼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도 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만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말’은 음성이나 글로써 존재하기 이전의 말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말을 뜻한다. 말 한마디로 위로를 얻어 그 말을 붙들고 힘을 낸 사람, 칭찬 한 마디로 콤플렉스를 벗어나 자신감을 얻은 사람, 빽빽한 글자가 가득한 책에서 유독 빛나는 한 문장에 멈춰서 본 사람들이 만나온 사적인 말 말이다. 인간은 이런 ‘말’을 갈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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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왜 기억을 짙게 하는가 _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책장 2020. 4. 16. 15:36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 416합창단 지음, 김훈 김애란 글 / 문학동네 세월호 합장단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가 도착했다. 포장을 뜯고, 표지를 읽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긴다. 노래 가사를 읽는다. 소리 내어 읽어본다. 노란 리본을 묶고, 노란 옷을 입고 합창하는 이들의 사진을 본다. 웃고 있다. 울고 있다. 눈을 감고 있다. 은 세월호 유족과 일반 시민 단원이 함께하는 416 합창단의 이야기다. 1부에서는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와 합창단원의 짧은 인터뷰가 실렸고, 2부에서는 김애란, 김훈, 지휘자 박미리, 프로듀서 류형선 님의 글이, 3부는 5년 간의 공연일지, 마지막 4부에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손 편지가 수록되었다. 노래와 손 편지를 읽은 부모들의 육성은 CD로 만들어져 함께 동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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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만나다 _ <슬픔의 비의>책장 2020. 4. 14. 21:28
‘책과의 만남’을 다루는 독자 인터뷰, '독자를 만나다'. 오늘은 ID ‘나는가끔국물을흘린다’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짧게 자기 소개 부탁듣립니다. 안녕하세요. 눈물이 많은 남자,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는 남자, '나는가끔국물을흘린다'입니다. 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는 두번째로 산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책입니다. 에서 시처럼 아름다운 그의 문장에 반한 터라 작가 이름을 검색해서 찾았습니다.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어요. 정사각형 판형이 마치 음악 앨범 같고 파란색이 ‘슬픔’이라는 테마와도 잘 어울리죠. 다만 파란색 커버가 금방 닳아서 꺼낼 때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표지 그림은 마치 씨실과 날실을 엮어 놓은 천 같았어요. 에이스케의 문장을 보며 정말 섬세히 직조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잘 어울리는 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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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것이 빛나지 않을 리 없다.책장 2020. 4. 9. 14:13
집에 고래를 들고 온 적이 있다. 책방에서 일할 때 고래를 좋아해서 ‘고래’라는 닉네임을 썼는데, 하루는 옆집 할머니께서 “고래 씨 내가 줄게 있어요.” 하시며 수줍게 손에 뭔갈 쥐어주셨다. “내가 밭에 있다가 이거 보고 고래 씨가 생각나서” 손에 들린 건 손바닥 만한 돌이었다. 자세히 보니 돌 위에 흰 선이 고래 같기도 했다. 선물로 돌을 받다니! 돌을 받고 기분이 좋다니! 집에 들고 가 열심히 닦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이 돌은 다른 사람한테는 돌, 내게는 한 마리 고래다.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책 마지막 장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에 대해 언급한다. 양적인 것은 서점에 높게 쌓여 있는 책, 떨어뜨려도 다시 주문할 수 있는 커피와 같이 잃어버린다고 해도 비용으로 다시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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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책장 2020. 3. 27. 18:09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 나지윤 옮김 / 예문아카이브 누구나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은 적이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말은 공허하고 ‘힘내’라는 말은 잔인하며 ‘괜찮아?’ 묻는 것은 강요 같았다. 하지만 지금 슬퍼하고 있는 그가 괜찮아졌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함께 울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고 사람들을 대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문학평론가이자 일본의 유명한 문장가인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암으로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