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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만나다 _ <슬픔의 비의>책장 2020. 4. 14. 21:28
‘책과의 만남’을 다루는 독자 인터뷰, '독자를 만나다'.
오늘은 ID ‘나는가끔국물을흘린다’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짧게 자기 소개 부탁듣립니다.
안녕하세요. 눈물이 많은 남자,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는 남자, '나는가끔국물을흘린다'입니다.
<슬픔의 비의>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슬픔의 비의>는 두번째로 산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책입니다.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에서 시처럼 아름다운 그의 문장에 반한 터라 작가 이름을 검색해서 찾았습니다.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어요. 정사각형 판형이 마치 음악 앨범 같고 파란색이 ‘슬픔’이라는 테마와도 잘 어울리죠. 다만 파란색 커버가 금방 닳아서 꺼낼 때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표지 그림은 마치 씨실과 날실을 엮어 놓은 천 같았어요. 에이스케의 문장을 보며 정말 섬세히 직조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잘 어울리는 표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림 왼쪽에 공간을 내어 일본어 제목을 넣어주신 것도 좋았습니다.
‘슬픔의 비의’라는 제목을 보고는 뜻이 궁금했습니다. ‘비의’의 뜻을 몰라서 처음에는 슬플 비(悲) 뜻 의(意) 로 읽었는데 찾아보니 숨길 비(秘) 옳을 의(義)를 쓰는 ‘비밀스러운 의미’라는 뜻이더군요. 義 한자가 의미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뜻은 정확히 몰라도 뭔가 멋진 글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짧은 질문에 참 길게 답변해주셨는데요. 혹시 책을 읽으시면서 마음에 남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한 단어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용기’입니다. 저자는 ‘용기란 무엇인가’란 에세이에서 진정한 생각을 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단어였습니다. TV에서 만화 보던 꼬꼬마 시절엔 용기라는 단어를 참 많이 들었거든요. 주인공들은 항상 용기를 내서 악당과 싸웠으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 삶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번에 다시 보니 짠했어요. 그래 그런 단어가 있었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났습니다.
그렇죠. 용기는 생각보다 잘 안쓰는 말이네요. 용기를 내야한다고 하면 괜히 겁쟁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용기’라는 게 지나치게 추상이고 공허한 말 같지만 두려움 앞에선 사람만 낼 수 있는, 어쩌면 그들에게만 허락되는 소중한 단어 같네요. 마음에 남는 문장도 있으셨나요?
작가가 스승님에 대해 회상하는 ‘스승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그가 가르쳐준 것은 사는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가 아니라, 걷는 게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이 부분이 계속 기억에 맴돕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사람도 아름답지만, 가끔은 인생 자체에 대해서 질문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 문장을 본 후부터는 산책할 때 걸음에 감각을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전까지 몰랐던 발자국 소리, 무게, 땅의 감촉을 느낍니다.
요즘 산책을 하시는 군요. 평소에 글쓰기도 좋아하시는데, 이 책을 읽고 쓰고 싶어진 글이 있으신가요?
많죠.. 좀 놀랐던 게, <슬픔의 비의> 김순희 번역가님이 이승우 작가님의 책을 일본에 소개하셨고, 와카마쓰 에이스케도 이승우 작가님의 소설로 한국문학을 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이렇게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았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공통분모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내용은 ‘우리는 모른다’가 주제가 될 것 같아요. 모른다는 인식에서 오는 겸손함과 거기서 출발하는 조심스러운 배려와 탐구에 대한 글이요.
좋아하시는 작가들이 어떤 분들일지 궁금해집니다. 글쓰기 외에 또 이 책은 독자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슬픔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하지만, 말과 쓰기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 중에 필사를 다루는 부분이 있습니다. 필사는 창조적인 행위다. 독자는 필사를 하며 수많은 말을 떠올리고 필사한 문장을 ‘자기 나름으로’ 받아들여 마음에 새기기 때문인데요.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도 가끔은 쓸모 없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작가님의 말에 희망과 위로는 얻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책에 인용이 참 많은데 그 인용을 보고 나쓰마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구입했습니다. 현암사에서 정말 멋드러진 양장 소세키 전집이 있더라고요. 다 사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 때문에 3권만 샀습니다.
아 좀 슬픈 얘기네요. 부디 다 사실 날이 오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슬픔의 비의> 어떤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요?
한창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추천하기 조심스러운 책일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고 난 다음에, 그 슬픔을 간직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선물 하시는 거라면 편지와 함께 주길 추천합니다. 단순히 책으로 위로 받으라는 느낌보다는 내게는 이러이러한 책이었고 이런 부분이 좋았는데 너에게는 어떨지 궁금하다는 뉘앙스가 슬픔을 겪은 사람에게 더 좋을 듯 하네요.
꼭 슬픔이 아니어도 한 감정에 너무 빠져 있거나, 어떤 감정을 돌아보길 원하는 사람, 자신을 객관화 해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합니다.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더욱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뒷표지에 ‘영혼의 문장가’라는 수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편지와 함께 주는 책 선물 정말 소중하겠네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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