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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으로 하는 작별> 3. 글의 '좋은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가.
    책장 2020. 3. 9. 17:46

    문제는 재미없는 책이 아니라 재미있는 줄 알고 샀는데 읽어보니 재미없는 책이다. 이런 책은 차마 덮어버리면 자존심이 상해서 꾸역꾸역 읽게 되는데 결국 얼마 가지 못해 덮게 된다. 다른 물건과 달리 아무에게도 줄 수 없이 책장에 일정한 폭과 높이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책. 대만 작가 룽잉타이의 <눈으로 하는 작별>은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덮었다. 너무 좋아서. 떨려서. ‘와 이거다 싶어서설레는 마음을 가다듬고자 책을 덮었다 다시 핀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바로 한번 더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왜 룽잉타이의 에세이는 좋은느낌'을 주는 걸까.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좋았던 부분을 모아보았다.

     

    지루하지 않은 집요함

    <눈으로 하는 작별>에는 룽잉타이가 사전이나 고서에서 검색한 정보로 쓴 에세이가 많다. 불과 2페이지 반 분량의 에세이 우울증에서는 두견새에 대해 백거이, 두목, 목공, 진관, 주희의 시를 인용하고, 생물학자였던 이시진의 책까지 인용하고, 에세이 두보에서는 ‘황 독’이라는 식물을 찾기 위해 다섯 권의 고서를 인용한다.

     

    백거이, 목공, 황독 등이 중화권 사람들에게 평범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이 에세이들을 즐겁게 읽었다. 룽잉타이가 찾은 정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을 집요함으로 이어가는 룽잉타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룽잉타이의 집요한 조사는 그녀가 얼마나 간절히 한 주제를 궁금해하는지를 증명한다. 에세이의 주체인 룽잉타이는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해서, 그녀가 많이 궁금해할수록 독자들 또한 궁금증의 대상에 이입한다. 그결과 그녀가 호기심을 점차 풀어갈 때 독자인 도 미션을 수행한 듯 속이 후련해진다. 룽잉타이의 에세이에서는 단순한 자료의 깊이를 넘어 그 자료를 찾기까지의 과정과 찾아내야만 하는 이유를 풀어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녀의 글에서 독자는 글쓴이의 알아가는 즐거움을 공감할 수 있다.

     

    느린 묘사가 주는 몰입감

    선명해지는 것은 룽잉타이가 친구와 어머니에 대해 나눈 대화를 쓴 에세이다. 이 글은 둘이 만난 발마사지숍에서 시작한다. 룽잉타이는 발마사지 숍의 반사 유리를 묘사하고, 발마사지 숍이 있는 로데오 거리는 묘사하며, 그 거리를 걸어가는 젊은 여자들을 묘사한 후에야 본론인 어머니에 관한 대화를 등장시킨다. 왜 어머니와의 대화를 처음부터 등장시키지 않았을까?

     

    묘사는 독자를 상상하게 한다. 작가의 묘사(시선)이 이동함에 따라 독자의 시선도 이동한다.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시선은 저자에게 무언가(어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이것이 글의 소재가 된다. 글쓴이의 시선을 따라온 독자는 왜 작가가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납득한다. 그래서 선명해지는 것에서 처음 등장한 어머니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어머니라는 소재가 친숙해서라기보다는 어머니를 소재로 삼기까지의 과정을 쓴 묘사의 힘이다. 유리 밖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을 묘사하며 글은 끝난다. 몰입한 독자는 작가의 묘사와 시선의 끝에서 작가가 그랬듯 무언가를 떠올린다. 이것은 여운이 된다.

     

    발마사지가 끝나고, 엄마를 대하는 나와 자쉬안의 비법 교환도 거의 막바지에 이른다. 창밖으로 젊은 여자가 지나간다. 통이 넓은 짧은 비단 퀼로트 위에 손바닥만 한 톱을 받쳐 입어 등과 어깨, 허리까지 훤히 드러낸 모습이다. 생기발랄하고 섹시해 보이는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몇 번 매만지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엷은 미소를 띤 채 천천히 걸어간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달빛이 땅 위로 젖어들듯이, 마음 속 무언가가 서서히 선명해지는 듯하다

    – p.52 ‘선명해지는 것

     

    대화의 힘을 이용한 편집

    <눈으로 하는 작별>3시간에서는 룽잉타이가 아버지와 이별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를 묶었다. 3부의 모든 에세이 앞에는 파란색 글씨로 룽잉타이가 부모님과 통화했던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있다. 에세이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용이지만 아버지가 점점 늙고 병들어 가는 시점의 통화를 읽은 독자는 통화를 엿듣는 기분이 든다. 동시에 룽잉타이의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독자는 작가로서의 룽잉타이가 아닌 부모에게 전화로 잔소리하는 딸로서의 룽잉타이를 상상한다. 에세이의 한정된 시간이 룽잉타이의 삶으로 확장된다. 짤막한 통화는 분위기를 만들고 에세이가 끝날 때까지 독자의 마음속에 맴돈다. 첫 줄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독자의 마음은 움직인 것이다. 파란색이 주는 쓸쓸함, 대화가 주는 힘, 통화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을 활용한 편집자 혹은 작가의 묘수다.

     

    좋은 글은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 몰입하는 글은 내 얘기같다. 실제로 독자가 에세이의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는 상관없다. 몰입한 독자는 작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작가가 느끼는 것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몰입상상으로도 치환할 수 있다. 좋은 글은 독자를 상상하게 한다. 상상은 적극적이고 노력이 필요한 행위다. 영상을 보기 보다 글을 읽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글이 살아남은 이유다. 읽은 글이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새겨지는 이유이며, 종이에 먹으로 찍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다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하는 이유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